산행 후기

#산에서 내려와서 하는 이야기산행 후기 전편 (2010- 2018)

8 / 5 / 2022 금요일, JMT 셋째 날 ( 글쓴이: 무타 )

Author
진선미 진선미
Date
2023-01-25 06:37
Views
460
(글쓴이 : 무 타 )

< 불어난 물,  전혀 보이지 않는 JMT 산꾼들 >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우니 짐도 무겁다. 
아침 8시,
어제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마련했던 집을 해체해서 담고 떠난다.
비는 안 오지만 습도는 99프로. 

약 2마일 내려오니 June Lake으로 가는 삼거리 맨 아래 지점이다.
비가 많이 온 후라 계곡물 소리가 우렁차서 제법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서로  힘을 모아야 계곡들을 건너겠다.
저 멀리로  Donohue Pass가 보인다.
이제 오른쪽으로였나 왼쪽으로였나 저걸 넘으면 되는데
등산객이라고는 여태 두 명 만났을 뿐이다.
쉬엄쉬엄 가보자.

다행히 진도는 예년에 비해서 빠르다.
아, Donohue Pass 가는 길에
이렇게 물이 많아서
그냥 못 넘을 계곡들이 있었던가 싶다.
도랑 몇은 징검다리라고는 안 보이고
물살도 세다.
어떤 개울은 너무 넓어서 짐을 지고는 못 넘겠다.
기럭지 긴 긴팔로님이 먼저 건너서
긴 팔로 배낭을 받아주시는 바람에 간신히 도움닫기로 건너 뛸 수 있었다.

아직 우리 빼고는 오가는 이 하나 없다. 
아마 Donohue 패스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그 걱정스런 계곡 몇 때문에 사람들이 못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패스 내려가자마자  바로 텐트를 쳐야겠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바람은 점점 세차지는데 
웬 물들은 어디서 그렇게 끝도 없이 흘러 나오는지.
처벅 처벅 발 부리만 보고 딛는 중인데,
아,  패스 넘기 바로 전에  등산객 부자를 만났다.
생면부지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까지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이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그들이 올라온 길
우리도 되짚어 갈 수 있는 것이다 .
역시나 물이 불어서 건너기 힘든 곳이 있다고 한다.
그래, 그래도 건널 수 있겠지, 당신들도 왔는데--
그러나 말을 더는 못 잇겠다.
이 분들 덩치와 포스를 보니 아들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다 미 해병대 출신임에 틀림없다 .
그러니 오늘 아침 Tuolumne Meadows 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
자신감이 싹 사라지고 다시 의기소침.

패스 정상에서 인증샷 찍고 서둘러 하산하는데 오들오들 춥다.
장차 넘어야할 걱정스런 계곡으로
머리 마저 무겁다.


< 불어난 물, 위험한 계곡  >

페스 정상 내려오면서부터는
가는 비에 안개까지 끼어서
시야가 20미터 정도만 열릴 뿐이다.
옷과 배낭은 젖었고 아까부터 춥다. 
이제 풍경 감상은 사치이고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아는 한, Donohue 패스 하산 길은
돌 길을 지나고 몇개의 작은 또랑을 건너서 
0.5 마일 내려오면
왼쪽으로 큰 호수가 있고
오른편 저  멀리로 수 마일
초원이 펼쳐져야 하는데
굵어진 계곡물 소리만 우렁차고 그것들 건너기가 수월치 않다.
징검다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물이 불어나서 그 위로 넘쳐 흐른지 오래다.
헛디디거나 미끄러져 빠진다면,,,
그 다음은 상상만해도 오싹 추워진다.
조심스럽게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모두들 잘 해낸다.

다시 1마일을 하산하니
이번에는 쭉 머리에 이고 있던 그 계곡이다.
당도하니 아마 두 시쯤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비는 더 이상 오지 않고 
건너기 쉬운 데를 이리저리 찾는 트레커들이 몇 보이고
계곡 너머에서 차마 못 넘어오고 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아, 다시 대략 난감이다.
이곳에서 캠핑사이트를 찾고 내일 넘을까.
실제로 나중에 만난 어느 부부는 여기서 자고 건너 왔다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촉수를 세워서
건너갈 물길을 재어 보았다. 
물살이 너무 세서 잘못하면 쓸려갈 수도 있는 자리가
도하 3분의 2지점에 있지만 그래도
거기만 조심하면 넘어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먼저 내가 건너서 배낭을 건너편에 내려 놓고
그  문제의 3분의 2 지점으로  되짚어 가서
남겨진 독수리남매가 건너 오는 것을 돕기로 했다.
천천히 조심조심 고비를 함께 하면서
깊고 넓은 물길을 마침내 건넜다.
한 솥밥 먹으면 식구, 죽을 고비를  함께 하면 동지 내지는 전우 아니겠는가?
이제 큰 고비는 넘겼다고,  잘 해냈다고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 적당한  캠핑 사이트만 찾으면 오늘하루 미션 끝이다.


< 긴 밤,  수류탄 돌리기 >

2마일 정도 더 내려왔을까.
나무다리 지나서 오른 편으로
공식 캠핑사이트 (지금은 휴년제로 closed)에서  0.8마일 못 미친 지점에
세 동 정도의 텐트를 칠 만한 평평한 자리를 만났다.
가까이 계곡도 있어서 머물기로 했다.
그러니까 3년전 여기 왔을 때에 비하면  2마일 앞 지점이고 
6년 전에 비해서는 0.8마일 앞에다 텐트를 치는 거다. 
내일은 좋은 날씨가 예상되는데다
오후 4시까지 Tuolumne Meadows Junction에 가서
서포트팀을 만나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묵으면 충분하다

각자 집을 짓고 여장을 푸는데
긴팔로님이 약간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시면서
일찍 집에 들어 가신다.
배수로를 파고 젖은 물건들을  바위 위에 널어 놓고
해 있을 때 이른 저녁을 지어 먹고
텐트에 들어가 보니
벌써 바닥에서 물이 올라 오고 있다.
얇은 침낭 두 개는 다 젖어서 꼭 쥐어짜면 물이 나올 지경이다.
이미 옷가지들도 다 젖어서
입은 옷은 체온으로 말리는 중이다.
발을 스토브에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뎁히자니
풉, 웃음이 난다.
맛이야 있거나 말거나
따끈한 국물에 고추가루가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되겠거니
김치찌개를 드리러 가서 안 사실.
긴팔로님은 그렇게 하시다가 벌써 물병과 양말이 다 빵꾸가 났다는 것이다.ㅎㅎㅎ
물증이 남았으니 빼박.

밤이 깊어지면서
아부지! 아부지!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바닥을 닦고 짜고 털고 해도
이미 침낭도 젖었지 옷도 젖었지,
이 일을 오똑한담?
궁리 끝에 개스 여유분이 있길래
물을 팔팔 끊여서  물통에 넣고 핫팩울 만둘었다.
그것을 침낭 속에 넣고 누워서
머리 어깨 무릎 발 순으로 돌리고
다시 머리로 보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기를 몇 번. 
물통이 뜨거워서 앗 뜨거 돌리고
다른 쪽이 추워서 그 쪽으로 돌리고,
하는 식으로
식을 때까지 돌리다 보면 그 피리어드가  2시간 정도 된다.
물 뎊혀 통에 장전하고
간간이 스며 나오는 바닥물 닦고
침낭 안에 뜨건 수류탄 끼고 누워서 돌리면서
사이 사이 눈 좀 붙이기를 4세트는 족히 했나 보다.
어쩌면 한 숨도 못 잤다, 고 봐야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아침은 온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겠지만 침낭이 밤사이 다 말랐다. 
내 체온과 더불어  1.5리터 그 뜨거운 수류탄 돌리기로
그 젖었던 침낭을 다 말린 것이다.
여태 멀쩡히 살아있슴도 대단하고
그러기까지 이 몸이 들인 정성과 노력도 대단하고
수류탄 돌리기 권법 발상도 대단한,
스스로  돌아보아 대견스런 전날 밤이
고슬 고슬하게 밝아오기까지
아부지! 아부지! 를
족히 열 번은 불렀던 것 같다.
지성이면 감천, 맞다.


< 산토끼의 재발견 >

이쯤에서 쉬어 가며,
산토끼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녀로서는 이번이 JMT 첫 출정이라고 하고
같이 하는 첫 백패킹인지라
서로 어떤 팀웍이 될까 궁금하면서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 했었다. 
그러나 막상은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많을 것을 느끼고 배웠다. 
미리 철저히 대비를 하고 현장에서 서로 마음을 맞춰 돕는다면
어떤 고생 길이라도 즐거운 길이 된다는 것이다.
텐트 치기와 스토브 다루기 같은 독립 숙식의 기본은 진즉 터득한 데다
진득하니 행군 진도를 빼는 뒷심까지 있어서 손 갈 일이 없다.
잘 챙겨서 알뜰하게 꾸린 살림살이 덕에 동료의 부족까지 채워주니
도리어 큰 의지가 되었다.
자주 내밭는 내 씨알도 안 먹히는 농담을
“쓰잘데 없는 소리 한다”고 못 받아주는 것 말고는,
같이 트레킹하기에 좋고 고마운 동반자로
산중에서
산토끼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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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25 21:59

    무릎까지 빠지던 마지막 강 건널 때 사진이 없어서 아깝네요. 젖지 않았어도 덜덜 떨리게 추웠는데, 다 젖은 몸으로 강 중간까지 거침없이 마중나와 산토끼와 긴팔로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게 잡아주고 다른 팀까지 도와 주겠다고 하시던 무타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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